A에 있는 액체를 C로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가 가벼운 통이라면 들어서 C에다 부으면 되겠지만 A가 아주 큰 어항이거나 기름이 들어있는 커다란 드럼통이라면 어떻게 액체를 C로 옮길 수 있을까요? B라는 관이 있다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커다란 어항의 물을 갈아줄 때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 같이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과학 원리는 사이펀의 원리입니다. 사이펀의 과학적 원리와 동서양에서 사이펀을 이용한 술잔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사이펀을 이용해 우리 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에는 무엇이 있나 알아봅시다.
사이펀의 원리
사이펀이란 높은 곳에 있는 액체를 기압차와 중력을 이용해 낮은 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관을 말합니다. 위의 그림에서 U자를 뒤집어 둔 모양의 관이 비어 있다면 액체는 어느 곳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U자관에 액체가 가득 차 있다면 A의 액체가 B를 거쳐 C로 흘러내립니다. A와 C에 있는 액체를 물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A의 수면과 B와는 높이 차이가 생깁니다. A의 높이가 낮기 때문에 A 위에 공기가 더 많이 쌓여 있어 A 수면 위의 대기압이 B의 대기압보다 높습니다. 따라서 이 대기압 차이 때문에 사이펀 관을 통해서 물이 A에서 B로 올라갑니다. 물이 B까지 올라가서 옆으로 밀려가면 물은 중력 때문에 C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A의 물이 완전히 C로 옮겨집니다. 이렇게 압력차를 이용해 액체를 고압에서 저압으로 흐르게 하는 원리를 사이펀의 원리라고 합니다.
동서양의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한 술잔
고대 중국 춘추시대의 제나라 임금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경계하며 올바른 처신을 위해 만든 잔과 조선시대 실학자 하백원이 만들었고 비슷한 시기에 도공 우명옥이 만들었다고 하는 계영배가 바로 이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술잔입니다. 도공 우명옥은 당시 백 자기를 만들어 명성을 얻었으나 방탕한 생활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후 이 잔을 만들어 지난 삶을 뉘우쳤다고도 합니다. 이 잔은 조선 후기 임상옥도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며 조선 역사상 최고의 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술잔에는 특이하게 가운데 70% 정도 높이의 기둥이 들어있습니다. 술을 이 기둥의 높이 전까지 따르면 술잔에 차있다가 술이 이 기둥의 높이를 지나게 되면 서서히 빠져나가서 잔이 비어버립니다. 술잔의 기둥 안에 물길이 있어 기둥을 넘게 술을 부으면 액체의 압력이 중력 방향과 같아져 그대로 다 빠져나가는 것이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을 경계하는 잔이라 하여 계영배라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런 형태의 잔은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가 처음 만들었다고 하며 알렉산드리아 헤론이 제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위 그림으로 계영배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이펀(관) 속 압력은 대기압인 1 기압과 같아서 술이 B와 같이 채워집니다. 그러나 C와 같이 잔 안의 기둥을 넘게 술을 채우면 기둥 속 관 안의 기압보다 채워진 술의 기압이 커져서 기압차가 생겨 중력에 의해 D와 같이 술이 그대로 아래로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기둥보다 술이 많아지면 중력에 의해 아래로 다 빠져나오게 됩니다.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한 예
우리는 매일 좌변기를 사용합니다. 레버를 당겨 변기 안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 넘쳐서 밖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물이 올라오면 갑자기 아무것도 만지지 않아도 물이 아래로 빨려 내려갑니다. 변기 옆면을 자세히 보면 구부러진 S자 관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좌변기와 연결된 관이 변기의 물통 쪽으로 둥글게 구부러져 올라갔다가 하수구 쪽으로 내려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이 물 표면보다 아래 있으면 수면에 작용하는 대기압으로 인해 물이 관 안으로 밀려 올라갔다가 굽은 관을 돌아서 다른 쪽 관으로 통과하면 공기의 압력 때문에 남아 있는 물을 관을 따라 계속 흐르게 됩니다. 그리고 사이펀 커피 추출기도 있습니다. 커피 추출기의 아래 플라스크에 원하는 정도의 따뜻한 물을 넣습니다. 그리고 위의 노드에 커피 여과지를 넣고 막은 후 적당량의 분쇄한 커피 원두를 넣습니다. 노드를 플라스크 위에 비스듬히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알코올램프를 켜서 플라스크의 물을 데웁니다. 물이 끓어올랐을 때 플라스크와 노드 마개를 결합합니다. 플라스크의 물이 계속 끓으면 온도가 높아져 내부 공기의 압력이 매우 높아집니다. 플라스크 안 내부 압력이 높아짐에 따라 물이 관을 따라 노드 위쪽으로 올라갑니다. 올라간 물은 노드 안의 커피 원두와 섞이게 됩니다. 물이 다 올라왔을 때 막대로 저어줍니다. 그리고 알코올램프를 꺼 줍니다. 그러면 둥근 플라스크 안이 식으면서 높았던 대기압이 낮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노드 위로 올라갔던 물이 커피를 추출해 중력 때문에 아래 플라스크로 도로 내려옵니다. 커피가 다 내려오면 뜨거운 노드를 조심스럽게 플라스크에서 분리하고 플라스크에 있는 커피를 잔에 붓습니다. 이렇게 사이펀 커피 주출기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저수지에 둑을 쌓고 둑 너머로 사이펀 관로를 따라 수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때도 저수지와 둑 너머 수로까지 사이펀 관이 물로 채워져 있기만 하면 물이 수로로 넘어갑니다. 필요할 때만 물이 넘어갈 수 있도록 잠금장치를 여러 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흔히 기름통에서 다른 통으로 기름을 옮길 때 사용하는 주름관 펌프도 사이펀의 원리를 사용한 것입니다.